우리나라 농수산 분야가 기후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경우 머지않은 미래에 먹거리 수급불안이 현실화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곡물 수입의존도가 74%(사료 포함)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식량안보에 직접적 위협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세계생태기금은 지난해 지구평균기온이 2.4℃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는 2020년이면 세계 곡물공급량은 5~14% 부족해지고, 국제곡물가격은 20%가량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여기에 평균기온 상승과 잦아진 이상기상 현상으로 농산물 생산성도 저하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농림수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산림청은 기후변화 시대의 식량안보 확보를 위해  ‘농림수산식품 기후변화 적응체계 구축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사업의 중점 추진 분야는 ▶기후변화에 따른 농림수산 영향평가 및 예측기반 구축 ▶기후변화 적응 농림수산업 생산성 유지기술 개발 ▶기상재해 대응 안정적 농수산식품 수급체계 구축 ▶지속가능한 저탄소 농림수산식품 산업체계 확립 등 4개다. 총 5016억원을 투입, 2014년부터 2020년까지 7년에 걸쳐 추진하게 된다.

 

이 사업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과 현장 목소리를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가 2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다. 공청회는 농촌진흥청 관계자가 ‘농림수산식품 기후변화 적응체계 구축사업’ 계획에 대해 발표한 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사업의 개선사항 및 발전방향에 대해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공청회 현장에서 나온 다양한 의견·제안들을 정리해 소개한다.

 

 

 

사업 발표를 맡은 농촌진흥청 이진모 연구정책과장은 “기후변화 진행으로 온대성이었던 한반도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에 따라 쌀 생산량이 감소되고 외래병해충 유입과 발생빈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종전까지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이슈는 ‘온실가스 감축’이었지만, 최근에는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를 피할 수 없다고 보고 ‘기후변화 적응’으로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쪽으로 돌아서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농림수산식품 분야는 기후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분야인 만큼, 안정적 식량 수급과 자급률 확보를 위한 중장기적 관점의 R&D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국립농업과학원 라승용 원장도 환영사에서 “지난해 태국의 3분의 1이 대홍수로 물에 잠기고, 최근 브라질은 극심한 가뭄으로 997개 도시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이러한 기후변화 현상은 농산물 생산성을 굉장히 위협하고 있고, 우리의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해선 이 사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진모 연구정책과장은 이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농림수산식품 분야의 기후변화 연구 투자규모는 316억원(2011년 기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농림수산부문 기후변화연구에 약 4700억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일본·EU 등도 관련 분야 연구를 강화하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농수산식품 분야 기후변화 대응이 미흡함을 지적했다.

 

 

토론에서는 농수산식품부가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여러 전문가에 의해 나왔다.

 

토론 패널로 참가한 서울대 이변우 교수는 “기후변화 환경에서도 생산성 향상이 가능한 신(新)품종개발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사업의 4개 분야 중 하나인 ‘기후변화 적응 농림분야 생산성 유지기술 개발’에서 ‘유지’라는 단어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며 “새로운 품종과 재배기술을 개발하면 현재보다 오히려 생산성을 높일 여지가 있는 만큼 ‘향상’이나 ‘기술개발’이라고 바꾸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고온현상·침수 등 이상기상 현상에 대한 스트레스 저항성이 높은 품종 개발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기후가 변화하면 그 기후에 맞는 작물을 찾고, 품종을 선정하고, 재배시스템을 만들어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일보 김익수 대표는 토론에서 “지금 기후변화 예측을 너무 낭만적으로 보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현재 가지고 있는 작은 데이터에 맞춰 예측하기보다 극단적 상황의 가능성까지 고려하는 등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농업생산기지 확대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 대표는 “갑자기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변화가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며 “해외기지를 통해 부족한 식량을 생산해 국내에 공급하는 방법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 농수산 분야의 인재양성이 다른 부문에 비해 소홀하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이상목 사무총장은 축사에서 “창의적인 젊은 인재들이 모일 수 있는 환경이 가장 열악한 곳이 농수산 분야”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이변우 교수도 “바이오테크놀로지 분야의 인력은 많이 양성된 상태지만, 그드리 제대로 갈 곳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장연구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청중은 “정부가 정책을 추진할 때 말로는 ‘산·학 공동’이라고 하지만 정작 ‘산(産)’은 빠져있다”며 “(산업계를) 부수적으로만 끌어들이지 말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소통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서령 기자 koseor@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