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집중호우·태풍이 이전보다 더 자주, 더 세게 발생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 뉴질랜드, 태국 등 세계 각국이 기상재해로 몸살을 앓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재해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어지럽게 엉켜있는 쓰레기, 이른바 ‘재해 폐기물’ 처리가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재해 폐기물의 효율적인 처리 방안을 강구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국립환경과학원 주관으로 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재해폐기물 국제 워크숍’이 바로 그 자리다.

 

이 자리에는 자국의 재해 폐기물 처리 시스템을 소개하기 위해 한국 국립환경과학원의 오길종 부장과 태국 웃티차이 깨오끄라짱(Vuttichai Kaewkrajang) 방콕시 담당관, 일본 국립환경연구소 토모노리 이시가키(Tomonori Ishigaki) 박사, 미국 플로리다대학의 티모시 타운센드(Timothy G. Townsend) 교수, 뉴질랜드 캔터버리대학의 샬롯 브라운(Charlotte Brown) 박사 등이 참석했다.

 

 

해외 전문가들은 재해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분리수거’라고 강조했다. 브라운 박사는 “폐기물을 재활용, 재사용하기 위한 분리수거는 환경과 우리의 건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쓰나미나 지진, 허리케인, 태풍, 홍수 등 각종 재해가 할퀴고 지나간 후 발생한 쓰레기들을 재해 폐기물이라고 한다. 이는 어느 한 종류에 국한되지 않는다. 뽑힌 나무를 포함한 초목류부터 전자제품, 가연성 쓰레기, 재활용 가능한 병 등 무척 다양하다. 석면, 비소, 중금속 등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도 방치될 수 있어 신속한 처리가 무엇보다 강조된다.

 

문제는 재해 폐기물의 양과 처리 범위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일본 동북지역에서 발생한 대지진과 쓰나미로 19년치에 해당하는 양의 폐기물이 발생했다. 2008년 한국 경북 봉화에서 홍수로 발생한 3일치 폐기물에 비하면 엄청난 양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매립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연 회복이 느리고 오염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원별로 분리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은 지진 폐기물과 수해 폐기물 처리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했다. 이시가키 박사는 “일본은 가정 내 폐기물과 목재, 건축 폐기물, 대형 폐기물, 침수된 자동차나 좌초된 선박, 유해 폐기물 등 7~8개 캐터고리로 나눠 폐기물을 분리한다”고 말했다. 분리된 폐기물들은 각각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매년 허리케인이 휩쓰는 미국도 폐기물 분리를 가장 우선시한다. 페인트나 연료 등 유해한 폐기물은 따로 수거한다. 매립하는 것은 환경과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지양한다.

 

타운센드 교수는 “망가진 냉장고를 내다버리면 전문 수거인력들이 음식물, 유해한 냉매제, 고철, 재활용할 것 등을 무조건 분리해서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재해는 대부분 집중호우로 인한 홍수가 차지한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 총 82번의 기상재해 중 폭우만 30번이었다. 한국 발표자로 참석한 국립환경과학원 환경자원연구부 오길종 부장이 최근 10년 동안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사례를 살펴본 결과 2004년과 2005년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대설을 제외하고 11번 중 9번은 모두 홍수가 원인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던 경험이 있는 지자체 36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7.8%만이 폐기물 처리 규정이 있다고 답했다. 분리한 폐기물을 임시폐기물저장소로 옮기는 작업도 4개 지역만이 실시했다. 재해 폐기물 처리에 대한 지자체의 인식이 아직까지 낮다는 결론이다.

 

우리나라는 ‘자연재해대책법’에 근거해 2003년 제정한 환경부의 ‘수해쓰레기 안전관리 지침’에 따라 현재 재해 폐기물을 처리하고 있다. 이 지침에 따르면 재해 폐기물은 ‘생활 폐기물’로 간주, 시·군·구청장이 관장토록 돼 있다. 시·도와 환경부는 간접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재해 폐기물의 신속한 처리에 몰두하다보니 재활용에 대한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오길종 부장은 “지자체의 체계적인 관리 및 유해 폐기물 처리 지침 등에 대한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며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자원을 회수하는 등 신속한 매립보다는 재활용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중앙과 지방정부, 폐기물처리업계, 민간봉사단체 등이 협력해 폐기물을 ▶재사용 ▶자원화 ▶에너지 회수 ▶위생 매립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도 강조했다.

 

 

신속하고 체계적인 재해 폐기물 처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 이들 전문가들의 입장이었다. 중앙정부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지방정부는 이에 맞추면서 각 지역의 현실에 맞게 시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허리케인으로 해마다 큰 피해를 보고 있는 미국의 경우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뉴올리언즈 지역에 큰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이후 2007년 재해폐기물관리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재해 폐기물의 감량과 재활용, 안전처리를 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1995년 고베대지진 직후 지진폐기물대책지침(1998년 제정)을 마련했고, 2004년 니이가타현과 후쿠이현의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큰 수해가 발생한 뒤에는 수해폐기물대책지침(2005 제정)을 만들었다.

 

태국은 홍수가 자주 발생하는 국가다. 지난해 방콕에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한 이후 ‘태국 재해폐기물관리 지침’을 통해 사전방지 대책을 수립, 재해발생시 재해 폐기물을 처리한 후 평가를 거쳐 개선방안을 도출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이유경 기자 leeyou@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