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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국가 중 ‘물 부족 스트레스 1위’ 대한민국. 그러면서 ‘물 인심’도 1위다. 오죽하면 ‘물처럼 쓴다’는 말이 나왔을까. 어느 식당을 가도 물만큼은 무제한 공짜. 수도꼭지만 틀면 깨끗한 물이 콸콸 나오는 데다 수도요금도 싸다. 어떤 건물은 매달 정기적으로 내는 관리비에 아예 수도요금을 포함시킨다. 아무리 많이 써도 돈은 똑같이 낸다. 이러니 물을 ‘물처럼’ 쓸밖에.

 

물과 관련해 1위를 차지한 분야는 또 있다. 국토 면적 대비 댐·저수지 밀도가 세계 1위다. 우리나라의 댐·저수지는 1만8000여개. 그 중 국제대형댐위원회(ICOLD)에 등록된 대형 댐(높이 15m 이상)만 1200여개다. 여름에 내리는 막대한 양의 빗물을 가둬놓을 그릇이 필요해서라지만 좀 지나치다 싶기도 하다.

 

댐·저수지 건설은 대표적인 ‘물 공급정책’의 하나다. 그러나 이미 댐·저수지 밀도가 세계 1위 수준인 상황에 언제까지나 댐을 건설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물 부족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경율 환경실천연합회 회장을 만나 ‘물 부족 한국’의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이 회장은 강제적 정책보다 ‘자발적’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정부가 대중목욕탕 샤워기에 의무적으로 절수기를 설치하도록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물 낭비를 부추겼다”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지난 2001년 수도법 개정에 따라 숙박시설과 대중목욕탕 등에 절수기 설치를 의무화했다. 강제적으로라도 물 절약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황당한 일들이 벌어졌다. 목욕탕 이용자들이 샤워기 절수 버튼을 철사 등으로 묶어 물이 계속 나오도록 만든 것. 버튼을 누르면 일정시간 물이 나오다가 저절로 멈추는 방식의 샤워기도 문제였다. 이용자가 버튼을 누르고 금방 자리를 뜨는 경우 사람은 없는데 물만 계속 나오는 일이 벌어졌다. 대중목욕탕에 가면 지금도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 회장은 “절수기를 설치한 목욕탕과 설치하지 않은 목욕탕을 비교해 보니, 절수기를 설치한 목욕탕의 수도요금이 더 많이 나왔다”며 “국민의 자발적 실천이 없으면 강제적 정책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생활 속에서 낭비되는 물만 줄여도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치질을 할 때는 컵에 물을 받아서 하고, 빨래는 모아서 한꺼번에 하고, 샤워할 때도 물을 안 쓸 때는 껐다가 다시 켜는 등 물 절약이 생활화 되어야 합니다. 세제도 중요해요. 화학세제에 포함된 ABS(계면활성제), 노르말헥산 성분은 대표적인 수질오염 물질입니다. 오염 시킨 것을 정화시키려면 많은 물이 또 필요하죠. 친환경세제만 사용해도 물 절약에 큰 도움이 됩니다.”

 

 

공급 위주의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한계점을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국토면적 대비 댐·저수지 개수가 제일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한탄강, 연천에 댐을 또 짓고 있어요. 마을마다 저수지도 짓고 있고요. 물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이렇게 대량 공급 위주 정책으로만 가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댐과 저수지는 생태계와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습니까.”

 

이에 대해 그는 몇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먼저 생활용수, 농업용수, 공업용수 등 사용목적에 따라 수질과 요금 단가를 구분해 공급하는 방식이다. 농업에 사용되는 물, 공업에 사용되는 물의 수질이 먹는 물과 똑같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먹는 물과 화장실 물의 수질이 똑같다는 것도 문제가 있어요. 화장실 물은 건물 자체적으로 빗물을 저장해서 사용해도 되요. 큰 건물은 중수처리 시설을 설치해 한 번 사용한 물을 재활용해서 화장실 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모두 정수(淨水)에 소모되는 물과 비용을 아끼기 위한 방안들이다.

 

소규모 공급방식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신축하는 건물에 집수(集水)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해 최대한 빗물을 이용해서 공급하도록 하는 소규모 공급방식으로 바꿔가야 합니다. 농업용수도 마찬가지예요. 대규모 공급에 의존하지 말고, 각자 논에다가 빗물을 저장하면 그 양이 엄청납니다. 앞으로는 정부의 대량 공급에만 의존하지 말고 개인이 필요에 따라 물을 저장해 사용할 수 있는 수요자 중심의 시스템을 확충해 가야 합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물의 소중함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리터당 석유 가격이 2000원입니다. 비싸다고 난리죠. 그런데 요즘 수입 생수 가격도 2000원이 넘습니다. 우리가 지금부터 물을 아껴 쓰지 않는다면 앞으로 물 한 컵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점점 올라갈 겁니다. 전 세계적으로 매일 5000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물 때문에 사망하고 있어요. 우리 국민들이 ‘비싼 물’ ‘소중한 물’이라는 점을 잘 인식해서 물을 절약하고 버려지는 물도 재활용해 자원화 시키는 것, 그것만이 현재와 미래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

 

 

이 회장의 사무실 탁자 위에는 크고 작은 찻잔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그 중 제법 큰 잔을 골라 기자에게 ‘하얀 민들레 차’를 대접했다. 흔히 알고 있는 노란 민들레와는 달리, 하얀 꽃을 피우는 민들레는 청정지역에서만 자란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귀한 물을 남기면 안 되는데…”라고 말하며 헐레벌떡 차를 들이키는 기자에게 그는 탁자 옆에 놓인 커다란 바구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남은 차는 여기 모아서 화초에 물을 줄 때 사용합니다.” 바구니 안에는 손님들이 마시고 남긴 차가 조금씩 들어있는 찻잔들이 담겨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말로만 ‘물 아껴 쓰자’ ‘환경 보호 하자’고 하면 뭐하나요. 실천이 중요합니다.” 이경율 환실련 회장, 그는 ‘실천’하는 환경운동가였다.

 

 

이경율 환경실천연합회 회장은…

대학시절부터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진주산업대에서 환경공학을,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환경보전학을 각각 전공했다. 현재 환실련 회장과 함께 재단법인 국토환경재단 이사장을 겸하고 있다. 2008년부터 저탄소 녹색성장 국민포럼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부터는 환경부 중앙환경정책위원회 위원(환경정책분야), 기획재정부 재정정책자문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고서령 기자 koseor@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