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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의 날씨칼럼] 날씨가 일으켜 세운 멕시코 역사
  2013-10-18 09:25 정연화   
 
라틴아메리카는 오랜 세월동안 서구의 침략과 지배를 당했다. 그러다보니 아메리카 민중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투쟁해온 수많은 혁명가가 나왔다. 쿠바의 ‘호세 마르티’, 페루의 ‘호세 카르로스 마리아테기’, 아르헨티나 출신의 ‘체 게바라’ 등이다. 그들은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희망이었고 꿈이었으며 위대한 영웅이었다. 멕시코 또한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스페인의 압정에 시달리다 독립했지만 스페인 지배자 못지않게 멕시코의 독재자들은 민중을 수탈했다. 그러기에 멕시코인들에게 자유를 위해 투쟁을 벌였던 ‘에밀리아노 사파타’는 영웅이었다.
 
이와 더불어 스페인의 지배로부터 본격적인 독립전쟁을 일으킨 ‘미겔 이달고’도 영웅으로 대접 받았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호소하는 그의 연설은 민중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달고가 이끄는 혁명군은 스페인 왕정 군대를 무너뜨리고 멕시코시티를 점령하는 전과를 거두지만 결국은 진압 당하게 된다. 약 1년 동안 계속된 독립전쟁은 실패했지만 이 사건은 멕시코 민중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어떻게 30명밖에 안 되는 혁명군이 순식간에 10만 명으로 불어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정치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1800년대 초반, 유럽은 나폴레옹 전쟁에 휩싸여 있었다. 1808년 3월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해 항복을 받았다. 자연히 스페인이 지배하고 있던 아메리카의 식민지도 프랑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문제는 프랑스가 전쟁을 치르느라 라틴아메리카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는 것. 그러자 지금까지 억눌려 있던 라틴아메리카에 독립의 물결이 일렁거렸다.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독립전쟁이 벌어졌다. 파나마 이남 지역에서는 ‘호세 데 산마르틴’과 ‘시몬 볼리바르’가 스페인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투쟁했고, 멕시코에서는 ‘미겔 이달고’ 신부 등이 독립전쟁에 나섰다.
 
두 번째로 기후변화가 중요한 원인이었다. 독립전쟁이 벌어지기 3년 전부터 멕시코에는 가뭄이 들었다. 관개시설이 없는 멕시코의 고지대에서는 1년에 한 작물밖에 재배하지 못한다. 작황은 여름 우기에 달려있는데 두 해 동안 비가 오지 않아 계속 흉작에 시달리던 이 나라에 1810년 발생한 엘니뇨는 청천병력이었다. 특히 1810년은 3년 동안 계속된 가뭄이 정점에 달했던 해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이후에도 멕시코 내에서 혁명이 빈번히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멕시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지도자 ‘판초 비야’가 주목을 받았다. 몇 년에 걸친 전쟁 끝에 그가 이끌던 군대가 카란사 장군에게 패하면서 그는 멕시코 북부의 치와와로 돌아갔다. 내전에서 미국이 카란사를 도와줬던 것에 앙심을 품었던 판초 비야는 1916년 3월 9일 15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미국 영토인 뉴멕시코의 콜럼버스를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미국 군인들과 민간인 17명이 죽었다. 멕시코 독립전쟁의 불똥이 미국과 멕시코 전쟁을 부른 것이다.
 
당시 미군 병사들은 무선통신을 이용하거나 공중 정찰 지원을 받는 등 최신식 무기로 무장했다. 이제 멕시코에 도착만 하면 판초 비야와 그 군대는 항복할 수밖에 없으리라 여겼다. 많은 미국 기자들이 승리의 순간을 취재하기 위해 미군을 따라 전쟁터로 나갔다. 출정하는 미군 병사들은 마치 축제를 벌이러 가는 사람들 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멕시코 북부 황야지대에 도착해 작전을 시작하면서부터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초반 몇 달 동안 황야지대를 샅샅이 뒤졌지만 판초 비야의 행적을 알아낼 수 없었다. 몇 달이 지나도 아무런 성과가 없자 여름에 가서는 무려 병력을 12만 3000명까지 증강시켰다. 한여름, 황야지대와 산악 및 작은 사막지역에서 군사작전을 벌이기에는 악조건이었다. 미군 병사들은 판초 비야를 뒤쫓다가 진이 빠져 버렸다. 낮에는 40℃까지 올라가는 무더위로, 밤에는 10℃ 이하로 떨어지는 심한 일교차에 체력이 바닥나면서 환자들이 속출했다. 더군다나 모기떼가 극성을 부리며 말라리아 환자가 수도 없이 발생했다. 겨울로 접어들 때까지 쫓고 쫓기는 게임은 계속됐지만 미군은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더 이상의 작전 수행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미군 수뇌부는 결국 1917년 1월, 철수 명령을 내렸다. 미군이 퇴각하자 판초 비야는 길목 곳곳에서 기습을 했다. 퇴각하는 미군은 비행기까지 동원해 후방을 막아야만 했다. 미군 토벌대가 오히려 응징을 당한 것이다.
 
한 미군 종군기자는 “미군은 멕시코 국민 전체와 전쟁을 벌였다. 게다가 멕시코 북부지역의 황야와 산악기상은 예상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은 건국 이후 가장 치욕스러운 전쟁을 벌였다”고 기록했다. 최신식 무기를 갖춘 미국도 결국, 멕시코의 지형과 날씨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 wxbahn@kweath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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