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5호 태풍 볼라벤의 이동경로 조작 의혹과 관련한 공개 토론회가 20일 열려 주목을 받았다. 기상청과 한국과학언론인회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공군회관에서 “태풍의 위치 분석, 조작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100여명이 참석해 시종일관 큰 관심을 보였다.

 

이날 토론회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기상청 관계자 2명은 태풍의 진로 조작 의혹에 대해 “태풍의 경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조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주제발표에 이은 토론 과정에서 몇몇 토론 패널들은 조작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를 비난해 한때 분위기가 격앙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자 조선일보에는 ‘100km 차이 난 볼라벤 진로···기상청 조작 의혹’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1면에 실렸다. 기사는 8월 28일 서해에서 북상 중이던 태풍 볼라벤의 진로에 대해 미국, 일본 등과 비교했을 때 100km 이상 차이가 난다는게 주된 내용이었다.

 

볼라벤이 지나간 뒤 기상청은 “28일 오전 9시, 오후 3시, 오후 9시에 볼라벤의 태풍 중심 위치는 경도 125.6°였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 합동태풍경보센터와 일본기상청 발표보다 경도 0.8~1.1° 차이가 나는 것이다. 0.8~1.1°는 약 90~120km 정도에 해당한다.

 

기사에 따르면 기상전문가 A씨는 “태풍이 지나간 뒤에 발표하는 실제 진로가 경도 1°씩 차이 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는 것.

 

조작 의혹이 불거지자 기상청은 당시 즉각 보도자료를 통해 “관측 자료는 전세계가 공유하기 때문에 조작은 있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이후에도 의혹이 가라앉지 않자 기상청은 한국과학언론인회와 함께 20일 공개 토론회를 열기에 이르렀다.

 

 

이날 기상청 기상선진화추진단 켄 크로포드 단장과 예보정책과 유희동 과장은 각각 ‘외국의 태풍 예보 현황’과 ‘태풍 예보 업무’ 주제발표를 통해 태풍 예보의 어려움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유 과장은 “바다에서 태풍을 관측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위성으로 태풍을 볼 수 밖에 없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며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조작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공박했다.

 

또 그는 조선일보가 ‘경도 1° 이상 차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보도한 데 대해선 미국 국립허리케인센터(NHC) 자료를 토대로 반박했다. 유 과장은 “100km 차이는 기상선진국이라고 손꼽히는 미국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이라며 “태풍이 약화되고 와해되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전문가라도 중심위치를 분석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크로포드 단장과 유 과장은 태풍의 정확한 실제 진로는 태풍이 지나간 뒤 분석을 통해 확정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경우 실제 진로 확정까지는 6개월이 걸린다는 말도 했다. 그런만큼 태풍이 진행되는 시점에서는 미국, 일본, 유럽, 한국이 제시하는 진로가 다를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또 유 과장은 “태풍을 예보할 때 중요한 것은 태풍의 반경, 강도 분석과 거기에 따른 특보 결정”이라고 말했다. 태풍으로 인한 풍속의 세기나 폭우의 양 등을 분석해서 국민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상청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토론에는 ▶이우진 기상청 예보국장 ▶권혁조 공주대학교 교수 ▶정용승 고려대기환경연구소장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교수 ▶박방주 한국과학기자협회장 ▶김학진 한국과학언론인회 부회장 등이 패널로, 장재열 한국과학언론인회장이 사회자로 참석했다.

 

이들 중에는 조선일보의 조작 의혹 보도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김학진 부회장은 “기자들은 전문성을 갖추고 올바른 보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학부 기자들이 아닌 사회부 기자들이 기상분야를 담당하면서 사건·사고 위주로 기사를 쓰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풍전문가인 공주대학교 권혁조 교수는 “조작이라고 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지난 경험으로 봐도 다른 국가들과 태풍의 중심위치가 달랐던 적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방주 한국과학기자협회장도 “모든 관측자료는 전세계가 공유한다. 그 자료를 가지고 기상청이 조작을 해도 이득이 없다”며 조작 의혹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다. 또 박 회장은 “앞으로 조작 등과 같은 논란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기상청이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신문방송을 전공한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기사에 더 다양한 전문가의 이야기를 종합했어야 하지 않았나”라며 “신중하고 심층적인 보도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의혹 부분에 대해서도 그는 “다른 국가들과 태풍 중심위치에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분석이 모두 끝나면 그것이 오류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며 “현 시점에서 오류가 아닌 ‘차이’를 가지고 조작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기상청 예보국 이우진 국장은 당시 예보 책임자로서 “볼라벤에 이어 태풍 덴빈이 뒤따라와 2개의 태풍을 동시에 주시해야 하는 어렵고 긴박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국민의 안전은 물론 국가 경제 발전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 기상청의 임무”라며 “태풍 중심위치보다는 태풍으로 인한 강풍, 해일, 폭우 등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 패널은 모두 기상 관계자들이었다. 기상청과 언론, 교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패널들이 나왔지만 정작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인 조선일보 기자는 없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당초 토론회 패널로 조선일보 박은호 기자에게 섭외를 요청했지만 반응이 없자 기상 관련 전문가들로만 패널을 구성했다는 것.

 

때문에 토론회는 일방적이었다. 한 패널은 “태풍 진로의 실제 값은 아무도 모르는데 조작이라고 표현한 것은 무식의 소치”라며 “‘조작일보’라는 별명이 있는데 조작하지 말아야 한다”고 공격했다. 다른 참가자는 “조작이라는 것은 사기를 쳤다는 의미와 같은데, 공공기관이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쳤다는 말인가”라며 “올들어 이처럼 화딱지나는 일은 처음”이라고도 말했다.

 

이 과정에서 박방주 한국과학기자협회장은 “토론회장에서 한 언론사를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보도 당사자인 조선일보 박은호 기자는 취재 목적으로 참석했다가 패널들의 지적이 이어지자 질의시간에 재차 의혹을 제기했다.

 

박 기자는 “패널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의혹은 여전하다”고 반박했다. 기사를 통해 미 합동태풍경보센터와 일본기상청의 발표가 우리나라 기상청의 발표와 다른 것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는데도 정작 토론회에서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났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박 기자는 패널들의 발언과 관련, “기자의 노력과 지식 수준을 매도하는 것에 상당한 유감을 표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유경 기자 leeyou@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