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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도 태풍에 몸살을 앓았던 한해였다. 강한 비바람이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가면서 수많은 인명과 재산피해 등 쓰라린 상처를 남겼다. 바람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기만 했다. 특히 한겨울에는 차갑고 매서운 칼바람이 분다. 때로는 더운날 부는 바람이 우리에게 시원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렇듯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 부는지에 따라 바람의 호감도가 달라진다.

 

바람은 강수량, 일조량과 함께 농작물의 생장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상요소로 꼽힌다. 강한 바람으로 인해 벼가 쓰러져 한해 농사를 망치기도 해 우리나라는 예부터 바람에 관한 관측을 열중해 왔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바람을 풍(風), 대풍(大風), 폭풍(暴風)으로 구분했다. 이밖에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서는 ‘나무가 부러졌다’, ‘기와가 날았다’, ‘건물이 무너졌다’ 등 그때 당시의 피해상황을 묘사해 바람의 강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바람의 피해기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 - 문무왕 14년(674년) 가을 큰 바람이 불어 황룡사 불전을 훼손했다. ▶‘고려사’ 권2 ‘세가’ - 광종 경술 원년(950년) 봄 정월에 큰 바람이 불어 나무가 뿌리째 뽑혔다. 왕이 이 재난을 물리치는 방법을 물으니 사천(司天)이 말하기를 도덕을 닦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세종실록’ - 세종 10년(1428년) 5월 3일, 경상도 경주, 청도, 경산, 사천, 진주, 칠원, 진해, 영천, 창녕, 울산, 밀양, 합천 등의 각 고을에 이틀동안 큰 바람이 불어서 나무가 부러졌다. 전라도와 제주에는 큰 바람이 불고 비가 와서 소와 말이 병으로 많이 죽었다. 순천, 보성, 함평에는 큰 바람이 불어서 목책(木柵·나무울타리)이 무너졌으며 함길도(咸吉道·지금의 함경도) 정평, 함흥, 북청에서는 홍수가 나서 물에 빠져 죽은 자가 많았다.

 

 

조선시대 기상청을 가리켜 관상감(고려시대는 서운관)이라 불렀다. 날씨 관측과 책력(현재의 달력)을 제작하는 천문학, 풍수지리학을 기초로 하는 지리학, 왕실과 나라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명과학(운명, 길흉, 화복 등을 연구하는 학문, 또는 그 학문을 맡은 부서)이 주요 업무였다. 국가직 공무원격인 관상감 관리들은 하루에 세 번 천문기상을 관측하고 이를 매일 조정에 보고했다. 관상감은 측우기, 수표, 풍기 등 다양한 기상관측기구를 이용해 관측했다. 관측결과를 수집하는 체계도 잘 갖추어져 있어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상기술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렇듯 조선시대 관상감(觀象監)에서 날씨를 관측하고 기록했다. 이를 기록한 원부(原簿)가 바로 풍운기(風雲記)다. 오늘날에는 영조 16년(1740)부터 철종 12년(1861)에 이르는 121년간의 관측 기록이 전한다. 여기서는 특히 바람의 방향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했다. 조선시대부터 바람 측정에 비상한 관심을 두었음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다.

  

 

조선 전기의 학자 강희맹이 저술한 농서인 ‘금양잡록(衿陽雜綠)’을 보면 당시 바람 관찰에 대한 관심이 컸음을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여기에 ‘높새바람’이 언급되기도 했다. 금양잡록(衿陽雜綠)에 따르면 ‘바다를 거쳐 불어오는 바람은 따뜻해서 쉽게 비를 내리게 하고 식물을 잘 자라게 한다. 반면 이 바람이 산을 넘어가면 고온건조해져 식물에 해를 끼친다’라고 기록됐다.

  

‘높새바람’이란 산등성이를 넘어 그 반대쪽으로 부는 고온건조한 바람을 말한다. 동해에서 불어온 차고 습한 바람이 태백산맥에 부딪쳐 영동지방에 많은 비를 뿌린다. 반면 산을 넘어선 공기는 고온 건조해져 영서지방에 영향을 준다. 때문에 영동지역 사람들은 농사철에 동풍이 불기를 바라고 충청, 호남, 경기지역 사람들은 서풍이 불기를 바란다.

 

 

 

조선시대 궁궐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궁궐 안에서 부는 바람은 실제로 부는 바람 방향과 다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높은 나뭇가지에 깃발을 달아 바람의 방향을 파악해야만 했다. 한국천문학사(나일성, 2000)에 따르면 깃발이 가지에 휘감기는 일이 자주 발생했고 이를 해결하느라 높은 나무에 올라가는 것 또한 번거롭고 위험했다. 영조는 이런 불편함을 덜기 위해 대를 세우고 그 위에 장대를 꽂아 깃발을 달도록 했다. 이것이 바로 풍기를 꽂는 풍기대다.

 

풍기(風旗)는 풍기죽(風旗竹)이라 부르는 장대 끝에 긴 깃발을 달아 그것이 날리는 방향으로 바람의 방향을 재고 나부끼는 정도로 바람의 세기를 가늠한 기상 관측기기다. 풍기죽을 세웠던 받침돌은 풍기대(風旗臺)라 불렀다.

‘서운관지’와 ‘증보문헌비고’에 풍기대에 관한 기록이 전해진다. ▶‘서운관지’ - 영조 경인년(1770년)에 명나라의 옛 제도에 따라 관천대 돌난간 옆에 상풍간(풍기)을 설치하여 아침, 저녁으로 바람을 측정하는 일을 하게 했다. ▶‘증보문헌비고’ - 대궐 안에는 풍기가 있는데 이는 곧 예부터 바람을 점치려는 뜻이다. 창덕궁의 통제문 안과 경희궁의 서화문 안에 돌을 설치하고 거기에 풍기죽(風旗竹)을 꽂아 놓았다.

 

 

풍기는 바람이 농작물에 미치는 영향을 알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어업과 선박 운항에도 도움이 됐다. 조선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이 쓴 ‘성호사설’을 보면 해안에 가까운 절벽과 포구에도 풍기를 설치해 조세미 운반선의 안전을 보장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풍기대는 현재 경복궁과 창경궁에 남아있다. 실물을 보면 화강암을 다듬어 책상 모양으로 받침돌(대석)을 놓고 그 위에 구름무늬를 새긴 팔각기둥을 세웠다. 기둥의 맨 위 중앙에는 깃대를 꽂는 구멍을 팠다. 옆면 아래에는 배수구멍을 뚫어 안에 물이 고이지 않게 했다.

 

조선시대 궁궐을 그린 동궐도의 창덕궁 모습에서도 풍기대가 보인다. 경복전 터 앞마당, 대조전 우측의 통제문 안, 중희당 마당 등 세 군데에 설치됐음을 알 수 있다.

 
정연화 기자 lotusflower@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