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호 태풍 ‘너구리’가 9일 일본 오키나와를 지나 10일 일본 본토에 상륙해 큰 피해를 남겼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었던 태풍 ‘너구리’는 한반도 내륙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너구리’ 하면 귀엽고 깜찍한 동물이 떠오르지만 그와는 달라 이번 태풍은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름만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강풍반경 200km, 순간 최대 풍속 초속 30m 이상의 무시 못 할 위력을 지닌 태풍이었다. 일본 오키나와 주민 59만 명은 ‘너구리에 쫓겨’ 긴급 피난 권고를 받기까지 했다.
▲ 라면 ‘너구리’(왼쪽)와 일본 열도를 향해 북상 중인 태풍 ‘너구리’(오른쪽) <사진=농심 홈페이지, 기상청> ⓒ온케이웨더 정연화기자
8호 태풍 ‘너구리’는 우리나라에서 제출한 이름이었다. 뜻밖에도 태풍 너구리 이름 덕분에 한 식품업체의 같은 이름의 라면 인기가 급상승했다. 태풍 너구리 북상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던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편의점 GS25에서 판매된 ‘너구리’ 라면은 전주 대비 4.9%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너구리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었던 제주 지역에서의 ‘너구리’ 라면 판매는 30.2%나 급증했다.
다른 편의점업체인 세븐일레븐에서도 같은 추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전국 세븐일레븐에서 팔린 너구리 라면의 판매 증가율은 2.2%였다. 하지만 제주지역에서의 판매증가율은 18.9%를 기록해 전국 평균 증가율의 9배 정도를 나타냈다.
“중심부근 최대풍속 초속 17m 이상인 폭풍우 동반”
태풍이란 저위도 지방의 따뜻한 공기가 바다로부터 수증기를 공급받아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동반한 채 고위도로 이동하는 기상 현상이다. 적도 부근이 극지방보다 태양열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생기는 열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발생한다. 태풍은 대개 남·북위 5°이상인 지역에서 해수 온도가 26℃ 이상이고 대기 중에 소용돌이가 존재할 경우 생긴다. 이후 고위도로 이동하면서 열과 수증기 공급이 줄어들거나 육지로 상륙하게 되면 마찰력이 증가하면서 강도가 약화되고 소멸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열대 저기압’ 중에서 중심부근 최대풍속이 초속 17m 이상인 폭풍우를 동반하는 것을 태풍으로 정의 내린다.
▲ 8호 태풍 ‘너구리’가 9일 일본 오키나와를 지나 10일 일본 본토에 상륙해 큰 피해를 남겼다. <2014.7.9 오전 9시 천리안 기상위성의 수증기영상 자료> ⓒ기상청
14개국서 이름 10개씩 제출…국가별 특성 ‘뚜렷’
태풍위원회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태풍 피해 최소화를 위해 1968년 설립됐다. 회원국은 한국, 북한, 미국, 중국, 일본, 캄보디아, 홍콩, 태국, 필리핀, 베트남, 라오스, 마카오, 말레이시아, 미크로네시아 등 14개국이다. 2000년부터 이 국가들이 각 10개씩 고유어 이름을 제출해 태풍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140개 이름 중에서 우리말 이름만 20개나 되는데 남,북한 양국에서 각각 한글 이름을 제출하기 때문이다. ‘매미’ ‘기러기’ ‘장미’ 등 친근한 태풍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각 국별로 10개씩 제출한 총 140개 중 28개씩 5개조로 나눠 1조부터 5조까지 순서대로 사용한다. 보통 한해 발생하는 태풍은 연간 약 30여 개. 따라서 140개 이름을 모두 사용하려면 4~5년은 걸린다. 전체 이름을 한 번씩 다 쓰고 나면 1번 이름부터 다시 사용한다.
한편 태풍이름에는 그 나라만의 특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과 북한은 주로 동식물·자연현상의 이름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가 제출한 너구리·개미·미리내(‘은하수’의 순 우리말), 북한이 제출한 소나무·무지개·메아리 등이 그 예다. 우리나라는 태풍이 온화하게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주로 작고 순한 동·식물의 이름을 제출해 쓰고 있다.
일본은 별자리 이름을 많이 제출했는데 ‘덴빈’은 천칭자리, ‘야기’는 염소자리, ‘우사기’는 토끼자리를 의미한다. 중국의 경우는 신(神)의 이름이 많다. ‘펑선’(바람의 신), ‘하이선’(바다의 신), ‘뎬무’(번개를 관장하는 여신) 등 절반이 신의 이름이다.
반면 미국은 오히려 폭우·폭풍구름·폭풍 등 직접적으로 태풍을 의미하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편서풍·태풍 바람 합쳐지는 태풍 오른쪽이 더 위험
▲ 태풍의 오른쪽을 가리켜 ‘위험반원’이라고 부른다. ⓒ온케이웨더
태풍과 관련해 ‘위험반원’(dangerous semicircle·危險半圓)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태풍의 바람과 기압계의 바람이 합쳐지면서 더 강한 바람이 불게 되는 위험구역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태풍 진행방향의 오른쪽 반원을 가리킨다. 국가태풍센터에 따르면 태풍은 주변 대기 흐름을 따라 북상한다. 저위도 무역풍대에서 발생한 태풍의 경로는 서북서~북서진하고, 중·고위도에서 발생한 태풍은 상층의 편서풍을 타고 북동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위도 5°~25° 사이의 아열대 해상에서 발생한 태풍은 처음에는 북서쪽으로 이동하다가 편서풍대에 접어들면서 북동쪽, 오른쪽으로 꺾어 이동한다.
이때 태풍 진행방향의 오른쪽(위험반원)은 태풍을 움직이게 하는 주변 바람, 즉 편서풍과 반시계 방향인 태풍 자체의 바람이 합쳐지면서 풍속이 더욱 커진다. 이에 비해 태풍 왼쪽은 태풍을 움직이는 주변 기압계와 태풍 자체의 바람 방향이 서로 반대가 된다. 반대 방향으로 부는 바람은 부딪혀 상쇄되면서 상대적으로 풍속이 약해진다. 때문에 더 위험한 태풍의 오른쪽을 가리켜 ‘위험반원’이라고 부른다. 한편 일본은 많은 지역이 이번 태풍 너구리의 진로에 놓인 가운데 태풍의 위험반원에까지 들면서 ‘설상가상’으로 피해가 더욱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