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로 지구 평균기온이 오르면서 혹서기 사망자 수도 증가하고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름철 혹서로 서울과 대구, 인천, 광주 등 4개 도시에서 1994년부터 2003년까지 2127명의 초과 사망자(특정 기간의 평균 사망자수 대비 증가한 사망자 수)가 발생했다. ‘더위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현실화된 것이다.
서울 35°C 이상일 경우 30°C 이하 때보다 사망자 31% 증가
아주대학교 장재연 교수가 환경부에 제출한 ‘한반도 기후변화 영향평가 및 적응프로그램 마련-기후변화로 인한 건강피해 가능성 조사 및 피해 저감정책 방향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 일 최고기온에 따른 사망자가 날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서울의 경우 30~32°C부터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최고기온이 36°C에 이르면 30°C일 때에 비해 사망자가 약 50% 가량 늘었다. 대구의 경우 약 35~38°C 이상에서 사망률이 증가했다. 지역별로 거주환경에 따라 고온에 대한 민감성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의 일 최고기온이 35°C 이상인 경우 평균 사망자수는 108명. 25~30°C일 때 82.6명인 것에 비해 약 31% 증가했다.
특히 1994년과 1997년은 서울시민에게 유난히 땀나는 한 해였다. 일 최고기온이 30°C가 넘는 빈도가 각각 56회, 61회에 달했다. 1991년 33회, 2000년 53회로 최근 10년 동안 서울에서 30°C 이상인 날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00년 동안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1.5°C 상승했다. 이는 세계 평균인 0.74°C의 약 2배다.
1994년 7, 8월 두 달 동안의 일 최고기온은 평균 32.2°C였다. 전후년도 같은 기간 평균인 27.5°C, 28.5°C보다 현저하게 높았다. 7월 24일의 경우 38.4도를 기록했다. 35°C를 초과한 날이 15일로 국내에서 유례없는 혹서를 기록했다.
당시 교통사고사를 제외한 사망자는 총 5742명이다. 1993년, 1995년보다 각각 988명, 489명 증가했다.
혹서로 인한 사망원인, 열사병·심뇌혈관 질환 등
혹서기간 동안 사망자수가 증가하는 원인은 체내의 체온조절 기능이 망가지는 열사병 때문이다.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혹서기간 초과 사망자의 10~60% 정도를 차지한다.
일부 전문가는 혹서기 때 체온조절을 위한 심박출량이 증가하면서 심뇌혈관 질환자에게 무리가 와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지난해 통계청은 상반기 사망자가 사상 최고를 기록한 것에 대해 기상이변과 관련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실제로 2010년 전국 평균 폭염 발생일수는 12.1일로 10년 평균(8.9일)보다 늘었기 때문이다.
국립기후변화적응센터 이병국 센터장도 ‘신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미래 기후 전망 및 기후변화 영향 전문가 세미나’에서 “한 달 이상 지속하는 폭염과 열대야로 인해 2050년까지 사망률은 10% 이상 증가하고 추가 사망자는 약 3200명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기온이 1°C 상승할 경우 폭염사망률은 약 3% 증가하는데, 특히 65세 이상 노인은 일반인에 비해 폭염에 4배 이상 더 취약하다. 실제로 사람이 더위를 체감하는 온도를 나타내는 ‘열지수’도 10년 사이에 2배 이상 증가했다.
1991년 서울에서 열지수 ‘매우 주의(32.2~40.6°C)’ 발생 빈도는 16회. 2000년에는 37회로 10년 사이에 2배 이상 증가했다.
열지수(Heat Index)란 여름철 그늘에서 기온과 습도의 영향을 모두 고려한 상태에서 실제 인체가 느끼는 체감온도를 지수화한 것이다. 총 4단계로 26.7°C~54.5°C까지 주의, 매우 주의, 위험, 매우 위험으로 구분된다.
‘매우 주의’는 장시간 노출되거나 육체적 작업을 하는 경우 열사병, 열경련, 소모성 열사병 등의 발생이 우려되는 수준이다. 체감하는 더위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의미다.
이상기후로 뜨거워진 지구, 세계인들 위협
한국 뿐만이 아니다. 이상기후로 전세계가 끓고 있다. 2003년 여름, 프랑스에서는 기온이 40°C를 웃돌았다. 당시 1만1000명이 사망했다. 파리에서는 1일 사망자가 평소의 3배에 달하는 현상이 3일간 지속됐다. 영국에서도 2000명이 숨졌다.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도 폭염과 혹한과 같은 극단적 기후변화로 심장질환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런던 위생 열대 의학원(London School of Hygiene & Tropical Medicine)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폭염에 노출된 후 2주가 가장 위험하다. 특히 고령자나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로저 펭 교수도 환경건강분야 저널 ‘환경건강전망(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를 통해 폭염으로 해마다 166~2217명이 초과 사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1987년부터 2005년까지 시카고 지역의 폭염발생건수와 평균지속일수, 연간 초과사망자 수 등의 자료를 활용한 결과다.
로저 펭 교수는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 노력을 게을리 할 경우 예측한 결과보다 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 건강 지키는 시스템 보강에 나서야
이미 폭염은 여러 선진국 사이에서 위험 기상 현상으로 구분된다. 각 지역의 보건학적 영향을 평가하고 예측하는 폭염경보시스템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폭염 대책 중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이 ‘도시-고온건강경보시스템(Heat-Health Warning System)’이다. 미국 필라델피아시에서 1995년 개발돼 현재 미국 기상청의 여름철 폭염건강예보의 주된 지침서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08년 처음 개발됐다. 서울을 포함해 현재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인천, 수원 지역에서 시험운영 중이다.
국립기상연구소에 따르면 폭염으로 인한 초과사망자의 증가는 산업과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에서 대형화되어 나타난다. 특히 기후적으로 폭염 빈도가 높지 않은 도시에서 더 취약하다. 때문에 국내에서도 지역별로 건강 영향의 예측에 근거한 건강경보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시험운영중인 ‘도시-고온건강경보시스템’이 장기적으로는 폭염 피해를 사전에 대비하는데 고무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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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