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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유럽여행을 다녀온 김대수(28)씨는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중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로마로 갈 때보다 인천으로 돌아올 때 비행시간이 훨씬 짧게 느껴졌던 것. 김씨는 “실제로 계산해 보니 한국으로 돌아올 때가 3시간 정도 적게 걸렸다”고 말했다.

 

최근 뉴욕여행을 다녀온 유수진(34)씨도 비행 중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미국으로 갈 때와 한국으로 돌아올 때 비행노선이 달랐기 때문. 유씨는 “뉴욕으로 갈 때는 태평양을 건너서 갔는데, 인천으로 돌아올 때는 북극을 넘어서 왔다”며 “왜 다른 노선으로 가는 건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비행시간이 달라지고, 노선이 바뀌는 이유? 모두 ‘제트기류’ 때문이다. 제트기류란 북위 30~50° 중위도 지역 상공 8~13km에 불고 있는 강한 ‘편서풍 띠’를 말한다. 지구의 자전 방향(서→동)에 따라 형성된다. 여름철에는 평균 시속 65km, 겨울철에는 시속 130km의 속도로 분다. 겨울철 최대풍속은 시속 360km에 이르기도 한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갈 때, 영국에서 한국으로 올 때처럼 서→동으로 비행할 때 이 바람을 타고 오면 비행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에 따르면 인천발 런던행 항공기의 운항시간은 12시간5분, 런던발 인천행은 그보다 1시간 15분 짧은 10시간 50분이다. 한국으로 올 때는 항공기 뒤쪽에서 강한 바람을 받아 예정시간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다. 반면 런던으로 갈 때는 제트기류의 역풍을 받으며 비행해야 하기 때문에 비행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만큼 연료도 더 많이 쓰게 된다.

 

 

 

이처럼 제트기류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항공사에 득(得)이 되기도, 실(失)이 되기도 한다. 항공사들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편의 경우 제트기류를 십분 활용한다. 반대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운행시간과 항공유 절감을 위해 경제항로를 개발했다. 바로 ‘북극항로’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인천에서 뉴욕으로 갈 때와 올 때 같은 노선을 이용하면, 한국으로 돌아올 때 최소 1시간~1시간 30분 시간이 더 소요된다”며 “시간과 연료를 절약하기 위해 북극항로를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나 항공 인천발 뉴욕행 비행시간은 14시간, 뉴욕발 인천행 비행시간은 14시간 10분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 북극항로 덕택이다.

 

 

 

북극항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북극권은 지구 자전에 의해 대기권층이 얇아지기 때문에 ‘우주 방사선’의 노출량이 저위도보다 많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북극항로 운항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6년이다. 당시 대한항공이 항공기 운항시간 단축과 항공유 절감을 위해 북극항로를 이용하겠다고 하자, 조종사 노조는 ‘방사능 피폭 위험성’을 들며 크게 반발했다. 조종사들은 “북극항로를 자주 오가다 보면 체내에 방사능이 계속 축적될 수밖에 없다”며 “북극항로 운항을 개인별 월 1회로 제한해 줄 것”을 강하게 요구했었다.

 

북극항로의 방사선 피폭 위험성은 어느 정도일까. 인체에 유해한 수준까지 위험한 것일까.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제시한 북극항로(토론토~홍콩 구간)의 우주방사선량은 0.07~0.09mSv(밀리시버트·인체에 흡수된 방사선의 양을 측정하는 단위)다. 이는 FAA와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권고한 연간 방사선 기준치 20mSv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또 기존 미주 노선에 운영하는 ‘캄차카 항로’나 ‘북태평양 항로’ 등의 방사선 피폭량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대한항공측은 이같은 자료를 인용해 “북극항로 1회 운항시 노출되는 우주 방사선의 양은 안전한 수준이며, 오히려 비행시간이 단축되면 방사선 노출량이 감소될 수 있다”고 맞선 바 있다.

 

그러나 북극항로에 잠재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최근 발생한 태양흑점폭발처럼 대규모 태양 폭발이 발생할 경우 극지방의 방사선량은 위험 수준까지 급증하기 때문이다. 항공기상청 예보과 박정규 과장은 “태양흑점폭발 시에 북극항로를 운항하게 된다면 승객들은 엑스레이(X-ray) 100장을 찍는 것과 맞먹는 강도의 방사능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항공기상청은 태양폭발 등 우주기상 상황의 변화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이달부터 ‘우주기상예보’를 시작했다. 매일 국가기상위성센터에서 발표하는 우주기상예보가 항공기상청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4년 11월. B-29 폭격기 100여대를 몰고 일본을 공습하러 도쿄로 날아가던 조종사들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폭격기의 비행 속도가 이론상 속도보다 시속 150km나 느리게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때는 제속도를 회복해 일본으로 갈 때보다 현저히 빠른 속도로 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미군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종전 후 미국과 유럽의 기상 당국자들은 이 현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들은 북위 30~40°의 중위도 지역 상공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빠르게 흐르는 공기대의 존재를 확인했다. 제트기에서 공기가 분사되는 것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제트기류(jet stream)라 명명했다.

 

그러나 일본의 기상학자들은 자신들이 제트기류를 먼저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2차 대전 전에 기구를 띄워 기상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일정한 높이 이상에서 기구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관측했다는 것. 진주만 폭격 당시 다른 지역을 비행할 때보다 연료를 적게 준 것이 제트기류를 활용한 방증이라고 일본은 주장하고 있다.

 

<사진> 항공기상청 제공

 

고서령 기자 koseor@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