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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월 21일)은 24절기 중 10번째에 해당하는 절기이자 일년 중 해가 가장 긴 날인 하지(夏至)다. 이날은 태양이 황도(천구에서 태양이 지나는 경로)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해 북반구는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태양의 남중고도도 가장 높다. 따라서 정오의 태양 높이가 가장 높기 때문에 일사 시간과 일사량도 가장 많은 날이 된다. 서울(동경 126도 58분 1초, 북위 37도 32분 59초)의 해뜨는 시각은 오전 5시 11분 09초, 해지는 시각은 오후 7시 56분 38초로, 낮 길이는 무려 14시간 45분 28초에 이른다. 

 

 

하지 절기에 해당되는 속담이 있다. 바로 “하지가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산다”이다. 이는 하지가 지나면 농부들이 논에 물을 대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올해 하지는 음력 5월 2일로 음력 5월 중에 드는 하지는 대개 모심기가 끝나는 무렵이 된다. 때문에 하지 이후에는 논이 마르지 않게 물을 대줘야 모가 잘 자란다. 이때가 되면 농부들은 신발을 벗고 살아야 할 만큼 바빠진다. 가뭄이라도 들면 더욱 논에서 벗어날 틈이 없다. 농부가 물꼬에 발을 담그고 산다는 말에는 논물대기가 그해 농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물이 넉넉해야 벼농사가 잘 되기 때문. 그래서 논물 욕심에는 사돈도 친구도 없고 봇물싸움도 다반사로 벌어진다. 자기 논이 말랐을 때 허락도 없이 윗논의 물을 슬쩍 대는 물도둑질은 세상이 다 아는 도둑질이고 그래서 그다지 큰 죄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만큼 벼농사에서 논물의 중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논농사는 물농사”, “논에는 물이 장수”라는 속담도 있다.

 

 

농사에 물이 이처럼 귀한 시기에 유례 없는 가뭄으로 전국이 난리다. 서울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1908년 이래 104년 만인 올해 서울 등 중부지방에 나타난 최악의 가뭄으로 논, 밭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져 안타깝다. 유난히 장마전선이 기다려진다.

 

일반적으로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는 이동성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비가 자주 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올해 가뭄은 평년보다 극심하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기상청 김성묵 예보관은 “5월 이후 한반도 상공에 고온 건조한 고기압이 계속 자리 잡고 있어 비구름을 동반한 저기압이 우리나라로 다가오지 못하고 만주 북쪽이나 제주 남쪽 먼 바다로 지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소나기나 우박 등은 자주 내렸지만 이마저도 경기 내륙·강원 영서·경북 내륙 등 해안지방보다는 기온이 크게 오르는 내륙지방을 중심으로, 또 저지대보다는 지면 가열이 빠른 고지대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 마저도 강수의 지속시간이 짧고 국지적으로 내렸기 때문에 가뭄 해갈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현재도 우리나라는 오호츠크해 고기압의 영향을 받고 있다. 가뭄이 해소되려면 이 고기압이 물러나고 남쪽으로부터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하면서 장마전선이 북상해야 한다. 기상청 관계자는 “현재 장마전선은 제주 남쪽 먼바다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주에 장마전선이 한반도까지 북상하기는 힘들겠다”고 밝힌다. 덧붙여 “5호 태풍이 금요일(22일) 무렵 제주도 부근을 지날 것으로 보여 태풍이 지나고 난 뒤 다음 주 중반쯤은 돼야 장마전선이 북상할 것”이라며 “중부지방은 장마가 평년보다 다소 늦어질 전망”이라고 말한다.

 

이래저래 이달 중 시원한 비소식과 가뭄 해갈은 기대하긴 힘들 것 같다. 하지를 맞아 자연 앞에 인간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정연화 기자 lotusflower@onkweather.com